"독립운동가 간호사·간호학생 34인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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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간호사·간호학생 34인 기억"
  • 장현우 기자
  • 승인 2019.08.14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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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협회, 시·도간호사회 공동 참여 캠페인

대한간호협회와 전국 16개 시·도간호사회는 제74회를 맞은 올해 광복절을 기념해 '독립운동가 간호사·간호학생 34인을 기억합니다' 캠페인을 전개한다.

대한간호협회는 14일 "일제강점기 엄혹한 시기 독립운동가 간호사, 간호과 학생들은 뜨거운 민족의식과 기개로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웠고, 군자금 모집, 적십자활동, 사회운동, 첩보활동, 비밀연락, 독립군 규합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고 밝혔다.

간호협회는 "협회는 독립운동가 간호사들의 자랑스러운 이름을 기억하고, 고귀한 정신을 본받아 위대한 간호역사를 계속 만들어 나기 위해 캠페인을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간호협회는 이날 34인의 간호사와 간호학생들의 주요 항일운동 내용도 정리해 발표했다.

'군대해산 항전'
일제는 고종을 퇴위시키고 한일신협약을 강제 체결했다. 동시에 부속 밀약으로 군대해산을 단행했다.

이에 시위보병 대대장 박성환이 한국군대 지휘자로서 책임을 통감하고 자결했다. 박성환 장군의 순국에 한국군은 격분해 일본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이같이 긴급한 상황에서 세브란스병원과 보구여관의 간호사들은 몸을 아끼지 않고 부상병 간호에 힘썼다.

'대한민국애국부인회'
1919년 3·1운동 직후부터 상해 임시정부를 후원하고 독립전쟁을 준비하기 위한 각종 활동을 전개할 목적으로 여성단체들이 비밀리에 조직됐다. 이중 가장 대표적인 단체가 대한민국애국부인회다.

대한민국애국부인회에서는 3·1운동으로 투옥된 애국지사들의 옥바라지와 가족 구호를 위해 모금활동을 전개했고, 이 활동의 중심에 간호사들이 있었다.

'간우회 사건'
일제에 항거한 '간우회 사건'은 3·1운동 직후 조선총독부의원의 박자혜 간호사를 중심으로 일어난 독립운동이다.

박자혜의 주도로 조선총독부의원 간호사들이 모여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에 그치지 않고 주요 병원의 간호사들이 일제에 대항해 파업과 태업을 하도록 이끌었다.

세브란스병원 간호사들 서울 종묘 앞 만세시위
3·1운동의 열기가 채 가시지 않은 3월 5일 학생들이 남대문광장에서 대대적인 만세시위운동을 펼쳤다. 이날 세브란스병원 간호사 10여명이 군중 속에 섞여 부상당한 사람들을 치료하다가 일본 군경에게 체포됐다. 같은 해 12월 2일에는 세브란스병원 노순경, 박덕혜, 이도신, 김효순 간호사가 서울 훈정동 대묘(종묘) 앞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했다가 옥고를 치렀다.

'근우회'
근우회는 일제강점기의 대표적인 민족해방운동 조직이다. 근우회에 참여한 대표적인 간호사는 정종명(초대 중앙집행위원장), 김태복(평양지회 집행위원), 한신광(근우회지 창간호에 '근우운동과 재정방침에 대하야' 투고) 등이다.

국외활동
3·1운동 이후 블라디보스토크의 신한촌을 비롯한 연해주 각지에서 독립운동이 고조됐다. 만주 용정에서는 이름은 나타나지 않지만, 간호사들이 부상병을 치료하고 독립운동 활동을 돕는 등 큰 활동을 했다. 만세운동으로 속출한 사상자가 제창병원으로 옮겨졌고, 간호사 등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치료와 간호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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