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벌 안받으려면 CPR 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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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벌 안받으려면 CPR 할 수밖에"
  • 안창욱 기자
  • 승인 2018.02.06 07:2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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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명의료결정법 요양병원 우려 확산
"DNR 인정하고, 수가 보상 뒤따라야"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라는 의학적 판단이 선행된 환자에 대해 연명의료를 시행하거나 중단할지를 환자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하고, 그 결정을 법적으로 보호해 환자의 자기결정을 존중하기 위한 연명의료결정법이 4일부터 시행됐다. 그러나 벌써부터 일부 문제점이 노출되면서 벌써부터 '방어진료'를 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편집자 주]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초점] 연명의료결정법 무엇이 문제인가?

"병원과 의사는 연명의료결정법을 지켜야 한다. 처벌받지 않으려면 CPR을 해야 한다. 이것을 기본원칙으로 정했다."

5일 만난 모 요양병원 A원장의 말이다. 그는 요양병원계에서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의료인 중 한명이다. 

연명의료결정법이 이달 4일부터 시행에 들어갔지만 요양병원 현장에서는 법과 현실의 괴리가 너무 크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A원장은 "전에는 회생 가능성이 희박한 노인환자에 대해서는 DNR(심폐소생술금지동의서)에 따라 가급적 CPR(심폐소생술)을 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연명의료결정법대로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처벌하겠다는 게 정부의 방침"이라고 강조했다.

현 연명의료결정법에 따르면 담당 의사가 회생 가능성이 희박한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에 대해 연명의료 중단 또는 유보 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환자의 연명의료계획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또는 환자가족 전원의 동의 등 3가지 중 하나를 충족해야 한다.

요양병원 등에서 보편화된 DNR은 연명의료결정법에서 제외됐다.

만약 의사가 연명의료결정법을 위반해 연명의료 중단 또는 유보 대상이 아닌 사람에게 연명의료 중단 등을 이행하다 적발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이 때문에 환자 보호자로부터 DNR 동의를 받아 심폐소생술을 하지 않았다가 나중에 연명의료결정법 위반으로 처벌을 받거나, 소송에 휘말릴 수 있다는 우려가 갈수록 확산되는 분위기다.

환자로부터 연명의료계획서나 사전연명의료의향서, 환자 가족 전원의 동의 등을 받는 절차도 너무 까다롭다는 게 A원장의 지적이다.

그는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되기 전에는 환자 가족 2명으로부터 DNR 서명을 받아 불필요한 연명의료를 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구비해야 할 서류가 너무 많고, 가족관계증명서까지 첨부하라고 하니 황당할 따름"이라고 꼬집었다.

현행법상 담당 의사가 연명의료를 중단하거나 유보하기 위해서는 환자가 작성한 연명의료계획서나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외에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 판단서, 환자 의사 확인서, 연명의료중단 결정 이행서를 추가로 내야 한다.

그 후에는 연명의료 관리기관에 지체 없이 보고해야 하는데, 이를 위반해도 500만원의 과태료 처분을 받는다.

A원장은 "연명의료계획서를 관리기관에 보고하려면 환자와 병원의 공인인증서까지 있어야 한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어 그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연명의료 관리기관에 보고하는 건 일리가 있지만 연명의료 결과를 왜 관리기관에 보고하라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질타했다. 

그는 "과거에는 DNR 서류 한 장만 받으면 불필요한 연명의료를 하지 않아도 됐는데 연명의료결정법대로 하자면 단계도 엄청 많고, 구비해야 할 서류가 한두개가 아니다"면서 "그렇지 않아도 요양병원은 인력난이 심한데 어떻게 이 많은 일을 감당할 수 있겠느냐"고 따졌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는 CPR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면서 "서류를 준비하지 않으면 처벌받는데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고 항변했다.

그렇다고 행정업무에 대한 보상이 따르는 것도 아니다.

연명의료결정법에 따라 의료기관윤리위원회를 설치하고 보건복지부에 등록한 의료기관으로서 연명의료 대상이 되는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착용,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등 4가지 의학적 시술이 가능한 기관은 시범수가를 받을 수 있다.

시범수가는 연명의료계획료, 연명의료이행관리료, 연명의료결정협진료 등이다.

하지만 요양병원은 시범수가를 받을 수 없다.

의료기관윤리위원회를 설치했다고 하더라도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착용,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등 4가지 의학적 시술이 모두 가능해야 시범수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A원장은 "갑자기 요양병원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통상 환자에게 CPR을 하지 않는 범위에서 최선을 다했는데 지금은 연명의료 관련 서류가 없으면 무조건 심폐소생술을 해야 하고, 연명의료중단을 하더라도 다 기록하고 보고해야 하는데 수가 보상은 없다. 이게 연명의료결정법의 요점"이라고 잘라 말했다.

특히 그는 "다른 요양병원에 연명의료결정법에 어떻게 대응하느냐고 물었더니 대학병원으로 전원 시키면 되지 뭐하러 CPR 하느냐고 하더라"고 개탄했다.

A원장은 "의료기관과 의료진을 믿고 요양병원에서 시행 가능한 방식을 제시하고, 병원에 새로운 업무를 추가하면 당연히 보상이 뒤따라야 한다"고 못 박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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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수가 2018-02-06 08:29:23
보상 한푼 안하고 하라고 하면 병원은 땅파서 장사하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