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치료사 출신 이사장의 '불광불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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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치료사 출신 이사장의 '불광불급'
  • 안창욱 기자
  • 승인 2018.04.05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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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의 독후감에서 용기 내 시작된 존엄케어
행복나눔125운동이 만들어 낸 기적적 변화

 

인덕의료재단 이윤환 이사장
인덕의료재단 이윤환 이사장

존엄케어를 실천하는 요양병원

250만원 빚으로 시작한 월급쟁이 물리치료사에서 예천의 복주요양병원, 안동의 경도요양병원 이사장으로 탈바꿈한 인덕의료재단 이윤환 이사장.

이윤환 이사장은 일본에서 존엄케어 현장을 불러보고, 2011년 한국에서 처음 신체구속 폐지 선언을 한 창원 희연병원(이사장 김덕진)을 방문해 현장을 둘러보면서 언젠가는 반드시 존엄케어를 해야겠다고 맹세만 했다고 한다.

병원 직원들도 "우리 병원에서는 불가능하다"는 반응이 돌아왔고, 그 역시 강하게 밀어붙일 자신감이 없었다.

#간호사의 독후감

2년 뒤 이손병원 손덕현 원장이 42탈에 대해 쓴 '노년의 아름다운 꿈 이손으로 지킨다' 책을 밤새 두 번 읽고 400권을 구입해 모든 직원들에게 나눠준 뒤 독후감 공모전을 열었다. 이손요양병원 손덕현 원장의 '42'은 냄새제로·욕창제로·낙상제로·신체구속제로·탈기저귀·탈와상을 의미한다.

이윤환 이사장은 당시 3년차였던 김윤희 간호사의 독후감을 읽고 존엄케어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독후감 요지는 이렇다.

김윤희 간호사는 손덕현 원장의 책을 읽고 병동 할머니께 "할머니, 우리 한번 기저귀도 빼보고 걸어도 볼까요?"라고 물었다고 한다.

그러자 그 할머니는 "에이~됐어, 귀찮아. 그냥 이렇게 살다가 죽지 뭐"라고 말했다.

김 간호사는 "할머니의 그 말씀은 그동안 내가 무엇을 했는가에 대해 생각하게 했고, 어르신들이 원하는 걸 알려고 하지도 않은 채 하루하루를 의미 없이 보낸 나를 부끄럽게 했다"고 적었다.

김 간호사는 스스로에게 실망하고 부끄러워 이틀간 쉰 뒤 울고 있을 수만은 없다고 생각해 다시 출근했다.

이윤환 이사장은 "이런 직원들이 있는데 존엄케어를 못할 이유가 없었고, 미룰 이유도 없었다"고 밝혔다.

#쉬운 것부터

"우리는 일본의 병원도 아니고, 희연병원도 아니다. 처음부터 42탈을 다 할 수는 없다. 우리가 잘할 수 있는 것부터 하자."  두시간 마다 방송이 나오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지금은 체위 변경 및 환기 시간입니다. 문을 활짝 열어주세요."  인덕의료재단의 존엄케어는 이렇게 시작됐다.

#냄새를 잡기 위해

존엄케어를 하면서 세탁물이 2배 이상 늘었고, 일주일에 한 번하던 목욕을 두 번, 세 번 시켰다. 2회 이상 목욕을 실천하기 위해 직원 한 명당 두 세 분과 일촌을 맺었다. 이윤환 이사장도 일촌이 있다. 간병사들이 보다 편하게 일하도록 500만원 가량 하는 환자목욕침대도 전 병동에 배치했다.

병동마다 설치된 ‘탈기저귀 현황판’

#성공사례 발표

억제대를 쓰지 않은 성공 사례, 탈기저귀 성공 사례가 나오면 모든 직원들이 알 수 있도록 사례 발표를 했다.

또 낙상 방지를 위한 온돌병실 설치, 탈침대를 위한 주말 재활치료와 작업치료, 병동의 놀이 프로그램 실시, 2회 이상 목욕, 모닝케어 등 존엄케어 프로그램이 수 십 가지 만들어졌다.

#낙상 위험 환자는 온돌병동

낙상사고 예방은 환자가 침대에서 벗어나 생활하도록 유도하는 탈침대 실천과 함께 관리해야 의미가 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게 온돌병동 만들기다.

두 달 동안 탈기저귀 프로그램을 시도했다가 실패한 할머니를 온돌병동에 모셨다. 그 할머니는 하루 종일 엉덩이를 밀면서 30m나 되는 병동을 왔다갔다 했다. 그러면서 팔다리에 힘이 생겼는지 2주 만에 변기를 잡고 일어나 대소변을 보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탈억제대를 실천하기 위한 손장갑
탈억제대를 실천하기 위한 손장갑

#환자의 손발을 묶지 않기 위한 아이디어

간병사의 아이디어로 억제대 사용을 하지 않은 첫 사례가 나왔다. 자꾸만 콧줄을 뽑는 환자의 손에 인형을 쥐어줬더니 그 때부터 콧줄을 빼지 않게 됐다.

종합병원에서 전원해 온 환자가 가려움증이 심해 피가 날 때까지 긁자 억제대를 사용했다. 다음날 담당 간호사는 집에서 아이들이 갖고 놀던 인형을 목장갑에 바느질해서 달아놓은 다음 환자의 손에 끼워줬다. 인형 장갑을 억제대 대신 사용했더니 긁어도 상처가 나지 않았다.

이런 노력 덕분에 억제대 사용이 점점 줄어들었고, 존엄케어를 시작한 지 6개월이 지났을 때 환자를 묶지 않는 병원이 될 수 있었다.

#간병비를 급여화해야 하는 이유

인근 요양병원에서 강제퇴원하고 전원 온 환자가 있었는데 공격적이고 폭력적이어서 억제대나 신경안정제를 써야 할 상황이었다고 의료진이 보고했다.

첫날 환자는 복도를 배회하더니 바닥에 드러누웠다. 하는 수 없이 복도에 이불을 깔아드리고 거기에서 주무시게 했다. 전쟁 같은 첫 날 밤을 보내고 며칠이 지나자 할머니는 식사도 잘 하고 평온해졌다.

존엄케어를 실시하기 전이었으면 억제대를 쓰고 신경안정제를 투여했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이제 환자가 안정될 때까지 힘들어도 기다릴 줄 아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환자는 적응해 갔지만 일주일 만에 퇴원해 버렸다. 간병비가 비싸다며 아예 비용을 받지 않는 저렴한 요양병원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간병사가 부족한 그 병원에서는 서비스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지만 보호자의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소득에 관계없이 질 좋은 노인케어를 받을 수 있도록 일본처럼 간병보험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서 다시 대두된다.

#당연한 것에 감사하라

"다른 병원은 억제대 쓰는데 우리는 못 쓰니까 너무 힘들어요."  존엄케어를 시작한지 6개월이 지나자 직원들이 점점 지쳐갔다.

돌파구가 필요했다. 직원들이 존엄케어를 일로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당연히 해야 할 가치로 받아들일 수 있게 긍정성을 끌어올릴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래서 전 삼성SDI 사장이 주창한 행복나눔125운동을 진행했다. 이는 하루에 1가지 선행하기, 한 달에 2권의 책을 읽고 토론하기, 하루에 5가지 감사쓰기를 하는 것이다.

5가지 감사를 쓰다 보면 범사에 감사하게 된다. "오늘 점심 같이 먹어주어서 감사합니다" "인사했는데 반갑게 받아줘서 감사합니다."

#존엄케어에 더해진 진정성

존엄케어를 하면서 직원들의 희생만 강요할 수 없어 매년 장기근속수당을 지급했다. 간병협회 소속 간병사들은 근속기간이 길어 정규직보다 더 많은 혜택을 받았다.

그 후 간병사들은 환자에 대한 태도를 바꾸고 존엄케어에 대한 진지한 자세를 가진 사람들로 변하기 시작했다. 돈을 받았기 때문에 변한 게 아니라 직원들과 동등한 대우를 받으면서 파트너십을 이룰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윤환 이사장은 존엄케어를 하는 과정에서 3가지 원칙을 지켰다고 강조했다.

그는 "손해를 보더라도 존엄케어를 하겠다는 원칙이 중요하다"면서 "간병 적자 등 많은 손해를 보더라도 환자를 위한 서비스 향상, 직원 복리후생 증진을 목적으로 추진했기 때문에 직원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가능했다"고 밝혔다.

감사나눔경영은 직원들의 긍정적 마인드를 확장시켰다.

이윤환 이사장은 "하루에 5가지 감사한 일을 매일 쓰는 감사나눔경영으로 직원들의 긍정적 마인드가 확장됐고, 스스로 발전해나가는 존엄케어가 됐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고객과 함께 직원도 행복해야 한다는 원칙을 제시했다.

이윤환 이사장은 "직원들의 희생 위에 존엄케어를 추진하지 않았다"면서 "존엄케어로 환자가 행복해야 하지만 내부고객인 직원 역시 행복해야 하기 때문에 불편사항이나 요구를 적극 해결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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