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건복지부는 올해 3월부터 '의료-요양 통합판정' 시범사업을 실시해 판정 결과에 따라 요양병원, 노인요양시설, 지역사회 돌봄서비스로 연계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통합판정도구를 공개하지도, 관련 단체와 협의도 하지 않고 있어 요양병원 입원을 억제하는 방향으로 시범사업을 시행하려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9일 2023년 주요 업무 추진계획을 발표하면서 천만 노인시대에 전방위적으로 대비하기 위해 3월부터 '의료-요양 통합판정' 시범사업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의료-요양 통합판정'은 의료필요도와 요양필요도가 모두 높으면 요양병원으로, 의료필요도가 낮으면서 요양필요도가 높으면 요양시설로, 의료필요도와 요양필요도가 모두 낮으면 지역사회 돌봄서비스와 연계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의료-요양 통합판정도구를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수요자에 대한 서비스 형태가 달라질 수 있고, 요양병원, 요양시설의 경영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하지만 정부는 시범사업이 두 달 앞으로 다가왔음에도 불구하고 의료-요양 통합판정도구에 대한 정보를 전혀 공개하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관련단체의 의견 수렴 절차도 거치지 않고 있는 상태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2021년 10월 경기 안산·화성, 광주 서구·광산구, 부산 북구·강서구, 경북 안동·경산, 대전 유성 등 9개 지역에서 두 달간 실시한 '의료-요양-돌봄 통합판정체계' 모의 적용 사업을 시행한 바 있지만 당시에도 비밀작전을 수행하듯 전격적으로 시행했다.


보건복지부는 모의 적용 사업 하루 전 보도자료를 통해 사업을 공개했을 뿐 통합판정도구를 어떻게 설계했는지, 모의 적용 결과 성과와 문제점 등에 대한 자료를 전혀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손의료경영연구소(소장 손덕현)는 최근 건강보험공단에 의료-요양-돌봄 통합판정체계 모의 적용에 사용한 통합판정도구 자료를 요청했지만 비공개 정보라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손덕현 소장은 "2021년 모의 적용사업을 할 때에도 사전에 사업 내용을 공개하지도, 관련 단체와 조율하지도 않은 채 갑자기 시행했는데 통합판정도구조차 공개하지 않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면서 "환자들의 의료서비스 선택권을 보장하고, 장기요양 1, 2등급 판정을 받은 사람들은 반드시 요양병원에 연계하는 방식으로 판정도구를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한요양병원협회 김기주 부회장은 "잘못 설계된 통합판정도구로 인해 요양병원 입원이 필요한 분들이 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시범사업에 앞서 반드시 관련단체와 사전 협의를 해야 한다"고 단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