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병원, 가마니가 되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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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병원, 가마니가 되지 않으려면…
  • 안창욱 기자
  • 승인 2023.03.20 0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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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대한요양병원협회 노동훈 홍보위원장

지난 16일 대한요양병원협회 상반기 정기 이사회가 열렸다. 제10대 기평석 회장의 임기 마지막 이사회로 현안에 대한 치열한 논의가 있었다. 2014년 홍보이사를 시작으로, 박용우, 이필순, 손덕현, 기평석 회장과 협회 활동을 했다. 모든 시기가 위기와 고비였지만 지금처럼 요양병원이 어려웠던 시기도 없었던 것 같다. 

대한요양병원협회 노동훈 홍보위원장
대한요양병원협회
노동훈 홍보위원장

한 요양병원 이사장은 3~4년 전 개원할 당시 주변에서 ‘왜 요양병원을 하느냐’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요양병원의 현실이 녹녹치 않다는 말인 것 같다. 최근 여러 곳에서 요양병원의 30~50%는 없어져야 한다는 무시무시한 말이 들리고 있다. 

언제부터 요양병원은 적폐가 되었을까? 누군가의 부모님을 모시는 일은 가치 있는 소중한 일인데 말이다. 

고령의 만성 질환자, 치매 환자, 암환자를 모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먹고, 입고, 재우는 일에서 의사, 한의사, 간호사의 회진, 물리치료사, 사회복지사, 의무기록사, 방사선사, 임상병리사, 영양사, 조리사, 조리원, 미화직, 간병사 등 많은 직종의 사람이 모여 하모니를 이뤄야 요양병원이 운영된다. 요양병원을 운영하는 것은 오케스트라 지휘와 같다. 어려운 일이다.

요양병원의 일당정액 수가는 질병 기초가 아닌 미국의 요양시설(SNF, Skilled Nursing Facility) 기준에 따라 자원 소모량 기준(RUG, Resource Utilization Group)으로 만들었다. 

RUG는 시설 이용자의 자원 소모량이 기준이라, 임상적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문제가 있다. 문제를 인식한 미국은 질병, 동반질환, 식이, 인지, 기능상태 등을 고려한 새 수가 모델(PDPM, Patient Driven Payment Model)을 사용한다. 

자원소모량(RUG) 수가의 문제는 요양병원의 의료 기능을 약화시켜 중증 환자를 보면 볼수록 요양병원은 적자를 보게 되었다. 요양병원의 의료 기능이 약화되자, 정부는 요양시설 ‘전문요양실’ 시범사업을 실시했다. 의사 없이 의료행위를 하는 전문요양실은 의료법 위반 소지가 있지만 정부는 문제가 없다고 한다. 요양병원과 요양원의 기능정립은 요원해 보인다.

게다가 명확한 기준도 없는 의료-요양 통합 판정 시범사업을 실시 중이다. 이는 요양병원과 요양시설(특히 요양원)의 갈등을 불러일으킨다. 명확한 판정 기준이 없고, 판정 후 예상되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도 없기 때문이다. 요양병원과 요양시설 간 통합판정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고, 국민이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 국민이 납득한다면 요양병원, 요양시설도 수긍할 것이다. 

RUG를 처음 설계할 때 의사 1인, 간호사 1인 기준으로 수가를 설계했다. 요양병원은 대한병원협회 소속이어서 수가 협상을 함께 진행한다. 급성기 병원은 비급여 등 수익을 보전할 수 있지만, 요양병원의 비급여는 미미한 수준이다. 정부도 그런 문제를 인식해 의사, 간호사, 필요인력 가산 등 가산제도를 만들었다. 그럼에도 요양병원 수가는 인건비와 물가 상승률을 따라갈 수 없다. 

2019년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 요양병원 건강보험 수가체계 개선 방안을 보면 정부는 요양병원을 질병군별, 중증도별 기능분화를 촉진하는 새로운 정액수가 체계 도입방안을 연구 중이다. 중장기 입원이 필요한 주요 질병군별로 요양병원을 전문화해 지금보다 수준 높은 의료 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도록 수가를 개선한다고 한다. 요양병원의 전문성을 강화하는 좋은 제도로, 양질의 요양병원이 늘어나도록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 

정부의 정책에 맞춰 요양병원도 치료 역량을 높이고 국민의 신뢰를 받는 의료기관으로 거듭나야 한다. 요양병원은 환자의 건강을 회복하고 지역사회로 복귀시키는 역할도 해야 한다. 지역 사회 퇴원환자는 요양병원 의료진이 가장 잘 안다. 현재의 왕진 제도(일차의료 방문 진료, 장기요양 재택 의료)에 요양병원은 참여할 수 없다. 환자를 가장 잘 아는 것은 요양병원인데 말이다. 

요양병원은 필요하다. 적폐가 아니다. 요양병원의 임직원은 힘들고 어려운 일을 해낸 우리 사회의 빛과 소금 같은 존재다. 건강보험공단 직원들에게 좋은 요양병원을 찾는 전화를 가끔 받는다. 정부도 요양병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안다는 것이다. 어르신을 모시는 일에만 집중했기에, 정부는 요양병원이 계속 잘 할 것이라 생각하는 것 같다. 

이제는 우리의 목소리를 내야 할 시기다. 2023년 대한요양병원협회 춘계 학술세미나가 3월 29일 효창공원 내 백범기념관에서 열린다. 대한요양병원협회 회원 숫자가 더 많아져야 한다. 그리고 요양병원의 어려움과 생존 방법에 대해 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말이 정부에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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