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법 "업무정지 확정되면 CRE 환자 생명 위험"
의료용 산소를 실제 구입한 금액보다 높게 요양급여비용으로 청구한 요양병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업무정지처분을 받았지만 2심 법원이 행정처분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해당 요양병원을 업무정지할 경우 입원 중인 감염병 환자들의 생명과 안전에 중대한 위험을 초래할 소지가 높다는 것이 판결 이유다.
서울고등법원은 최근 CRE(카바페넴 내성 장내세균속균종) 감염병 환자들을 전문적으로 입원 치료하고 있는 A요양병원에 대한 보건복지부의 요양기관 업무정지 30일, 의료급여기관 업무정지 20일 처분을 모두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보건복지부는 2018년 11월 A요양병원에 대해 현지조사에 착수해 의료용 산소를 분기 가중평균으로 10L당 6원에 구입했음에도 10원에 구입한 것처럼 요양급여비용을 청구한 것을 확인했다.
보건복지부는 A요양병원이 이런 방식으로 2016년 6월부터 2018년 8월까지 1억여원을 부당청구했다고 판단해 업무정지처분을 통보했고, A요양병원은 처분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A요양병원에는 2023년 9월 기준으로 137명의 환자가 입원 중인데, 모두 다른 병원에서 전원된 CRE 감염증 환자들이다. 입원 환자 대다수가 70세 이상의 고령이며, 52명은 혼수상태에 있다.
CRE 감염증은 카파베넴 계열 항생제에 내성을 보여 치료가 어렵고, 특히 장기 재원환자와 인공호흡기 또는 중심정맥관 등의 침습적 처치를 받고 있는 중환자의 경우 치명률과 사망률이 높으며, 감염증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환자와의 접촉에 주의해야 하고, 기본적으로 격리 치료해야 한다.
A요양병원은 "사전 탑재된 프로그램에 따라 의료용 산소의 단가를 산정한 잘못이 있을 뿐 법 위반에 대한 고의가 없었고, 속임수를 사용해 위반행위를 한 것이 아니어서 업무정지처분에 대한 감경사유가 있었음에도 보건복지부가 이를 고려하지 않았다"며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서울행정법원은 A요양병원의 주장을 모두 기각했다.
1심 재판부는 "A요양병원은 의료용 산소를 실제 구입한 금액보다 과다하게 청구해 부당한 이익을 취득했고, 부당청구한 급여비용이 1억여 원에 달해 부당이득 규모가 크고, 부당청구 기간도 긴 점 등에 비춰 단순 착오라고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2심을 맡은 서울고등법원도 업무정지 처분사유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업무정지 30일, 20일 처분이 재량권을 일탈 남용한 것이어서 위법하다고 결론 내렸다.
서울고법원 "A요양병원은 수도권에서 몇 안 되는 CRE 감염증 치료 거점병원으로서 대학병원 응급실 수준의 의료장비를 대규모로 갖추고 있으며, 입원환자들은 3차병원에서 전원된 CRE 감염증 환자들로서 장기간 입원치료를 요한다"며 "전원의 주된 이유는 병실 수가 부족한 대학병원 측이 장기간 격리병실을 이용해야 하는 CRE 감염증 환자들을 모두 수용하기 곤란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또 재판부는 "만일 행정처분이 적법하다는 판단이 확정된다면 137명의 CRE 감염증 환자 모두 대학병원이나 다른 요양병원으로 전원해야 하는데 심평원의 자료에 따르면 서울 시내 요양병원 중 격리병실을 갖춘 요양병원은 극소수이므로, CRE 감염증 환자들을 다른 요양병원으로 전원 시키는데 어려움이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서울고법은 A요양병원이 처분 감경 또는 유예 의견을 제출했지만 보건복지부가 업무정지 처분에 갈음해 과징금을 부과할지 내부적으로 검토했다고 볼 자료가 없고, A요양병원이 부당 청구를 인정하면서 조사에 협조적인 태도를 보였음에도 복지부가 단순히 처분 사실관계가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곧바로 업무정지처분을 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2심 법원은 "업무정지처분으로 인해 A요양병원의 명예가 실추되고, 환자와 고객의 신뢰가 손상돼 사익이 침해될 뿐만 아니라, 입원 중인 다수의 CRE 감염증 환자들이 전원할 마땅한 병원이 없는 상황에서 업무정지처분이 확정되면 CRE 감염증 환자들의 생명과 신체의 안전에 중대한 위험이 초래될 것인데 이는 A요양병원의 사익이라기보다는 공익의 침해라고 볼 수 있다"고 환기시켰다.
법원은 이런 점을 종합해 보건복지부의 업무정지처분이 재량권을 일탈, 남용해 위법하다며 모두 취소하라고 선고했고, 대법원 역시 정부의 상고를 기각해 그대로 확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