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4단계 중증욕창 많아 적정성평가에서도 불리
고양시 자애요양병원은 전체 입원환자의 30~40%가 욕창환자다. 그것도 욕창환자 대다수가 3~4단계일 정도로 중증도가 매우 높다. 정형외과 전문의인 이인희 병원장은 2006년 개원한 뒤부터 욕창 치료에 매진해 왔는데 환자가 점점 늘어 혼자 감당할 수 없게 되자 후배인 홍성준(정형외과 전문의) 과장을 영입해 진료를 분담하고 있다.
욕창 치료는 통상 의사의 처방에 따라 간호인력이 드레싱 등을 수행히자만 자애요양병원은 의사들이 주도적으로 한다. 치료계획 수립에서부터 음압치료, 변연절제술, 국소피판술 뿐만 아니라 드레싱, 환부 처치 등도 의사들이 직접 하고, 간호인력은 보조적 역할을 수행한다.
홍성준 과장은 근무시간 대부분을 욕창 치료에 매달린다.
오전 8시 출근하면 바로 중증 욕창환자들을 수술하거나 처치한다. 9시부터 한 시간 동안 의료진들과 함께 환자 컨퍼런스를 한 뒤 다시 집중치료실과 병실을 돌며 회진한다. 그 과정에서 욕창 상태를 살피고 필요한 처치를 하거나 오더를 내리거나 당일 검사환자 결과를 확인한 뒤 치료 방향을 결정한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나면 병동으로 올라가 퇴근할 때까지 같은 진료를 되풀이한다. 틈틈이 신환 보호자 상담을 하고, 다른 입원환자 치료도 겸한다.
요양병원은 수술방이 따로 없기 때문에 홍성준 과장에게 병실이나 집중치료실은 곧 수술방이다.
홍성준 과장은 "자애요양병원은 현재 알려진 모든 욕창치료방법을 다 시행하고, 최신 지견도 접목하고 있지만 요양병원에 입원한 욕창환자들은 상태가 굉장히 좋지 않고, 임종을 앞둔 분들도 많기 때문에 환자 상태에 맞는 치료를 항상 고민하게 된다"면서 "마취 전문의나 수술방이 따로 없는 것도 한계"라고 설명했다.
욕창환자 입원경로는 골절, 파킨슨, 중증치매 등으로 자택이나 요양시설에서 와상상태로 지내다가 욕창이 악화돼 입원하는 사례가 절반 정도 된다고 한다. 대학병원 중환자실에서 욕창이 발생해 전원 오는 환자들이 나머지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욕창치료를 잘한다는 입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환자도 일부 있다고 한다.
홍성준 과장은 "병원을 접고 자애요양병원에 근무한지 5년 됐는데 욕창을 치료하면서 살아온 이 시간이 나의 의사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고, 정신적으로 편안했던 것 같다"면서 "이런 것이 자부심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욕창 환자가 늘어나는 것이 마냥 좋지만은 않은 것이 자애요양병원의 서글픈 현실이다. 욕창치료에 대한 보상체계가 미흡해 수가를 한 푼도 청구할 수 없는 사례가 부지기수이기 때문이다.
요양병원은 일당정액수가가 적용된다. 요양병원 일당정액수가는 환자의 임상적 상태와 서비스 요구도, 자원 소모량 등을 고려해 환자를 5개 군(의료최고도, 의료고도, 의료중도, 의료경도, 선택입원군)으로 분류하고 있다. 5개 환자군 별로 정해진 정액수가, 약제비, 치료재료 비용만 받을 수 있다. 여러 상병을 치료하더라도 추가 비용을 청구할 수 없는 구조다.
욕창도 마찬가지다. 욕창 치료의 질을 높이기 위해 의사를 추가 채용해 매일 최소 2~4번 드레싱을 실시하고, 그 과정에서 메디터치나 베타폼과 같은 욕창 치료재료 사용, 2시간 마다 체위 변경, 약 처방, TPN(완전비경구영양)을 포함한 영양 공급이나 고단백 치료, 상처배양검사(wound culture) 등 필수 검사, 음압치료, 변연절제술 등 엄청난 노동력과 비용이 들어가지만 모두 일당정액수가에 포함돼 있어 별도의 수가를 청구할 수 없다.
1일당 정액수가는 의사 1등급, 간호 1등급 기준으로 의료고도가 7만 5천원, 의료최고도가 8만 5천원이다. 일반적인 의료중도, 의료고도 환자와 욕창환자는 치료에 투입되는 의료인력과 치료재료대에서 차이가 크다. 또 욕창 개수에 따라서도 엄청난 치료비와 시간, 노력이 투입된다. 그런데 일당정액수가에 묶여있다 보니 욕창치료와 관련한 비용은 청구 자체가 봉쇄돼 있다.
의료고도 환자군은 사지마비, 편마비, 파킨슨, ADL 18점 이상, 경관식이, 산소투여에 해당하는 환자들이다. 대부분의 욕창환자들은 의료고도 환자군에 속하는 질병을 갖고 있으면서 추가로 욕창이란 질병까지 생긴 것이다.
의료진은 기저질환을 치료하면서 이와 별개로 외과적 수술이나 처치를 추가로 시행해야 한다. 당연히 인력을 투입하고, 고가 치료재료대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사지마비 환자든, 사지마비에 욕창까지 치료해야 하는 환자든, 경관식이 환자든, 경관식이와 별도로 3, 4단계 욕창 치료가 필요한 환자든 모두 의료고도 정액수가 7만 5천원만 청구할 수 있다. 욕창치료를 위해 사용하는 베타폼이나 메디터치 같은 치료재료 단가만도 7만 5천원, 1만 7천원에 달하는데 이런 비용도 보상받을 길이 없다.
이것이 일당정액수가가 적용되는 요양병원 욕창치료의 가장 큰 문제이자 의료진의 딜레마다. 대학병원에서도 외면하는 욕창환자들을 치료한다는 자부심이 크지만 경영적 손해를 감수하고 치료할 수밖에 없는 현실 때문이다.
그나마 요양병원 입원 기간 폐렴, 패혈증, 체내출혈, 격리 와중에 욕창이 발생하면 하루당 1만 1,480원의 '염증성 처치료'를 행위별 수가로 청구할 수 있긴 하지만 이 역시 불합리한 것은 마찬가지다.
염증성 처치 요양급여기준에 따르면 욕창 등에 대한 치료를 여러 부위에 실시한 경우에는 두부, 복부, 배부, 좌·우·팔·다리 등 7부위로 구분해 각 부위별로 해당 수가를 1개만 산정해야 한다. 예를 들어 환자의 발목에 3단계 욕창 3개가 발생해 각각 처치를 하고, 치료재료를 투입하더라도 '1개' 수가만 청구할 수 있다는 의미다.
수가도 문제지만 중증 욕창환자가 많으면 적정성평가에서 하위등급으로 밀려나 수가 불이익까지 감내해야 한다. 자애요양병원은 지난 6월 말 2022년 적정성평가 결과를 받다보고 좌절했다. 피부문제 처치를 통한 욕창 개선 환자분율, 일상생활수행능력(ADL) 개선 환자분율 등에서 낮은 점수를 받으면서 4등급이라는 충격적인 성적을 받았다.
홍성준 과장은 "욕창치료 개선율이 25~35%라고 하면 성적이 그리 좋아 보이지 않지만 전체 46명의 욕창환자 중에서 10~16명이 매달 좋아지고 있다는 수치다. 대부분의 욕창환자들이 3, 4단계인데 매달 단계가 개선되는 건 불가능하다"고 단언했다.
이어 그는 "장기적으로 6개월 만에 상태가 개선되는 환자도 있고, 90% 이상이 개선되지만 매달 개선율을 평가하는 현재의 적정성평가 방식은 3, 4단계 욕창환자가 대부분인 자애요양병원에는 매우 불리한 지표가 아닐 수 없다"고 개탄했다. 욕창 개선율 평균이 50%가 나오기 위해서는 경증이거나 욕창 입원환자가 많지 않을 때에나 가능하다는 것이다
3~4단계 욕창 환자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의료최고도나 의료고도와 같은 중증환자 비율이 높다는 의미일 수 있다. 이 때문에 중증환자 비율이 높은 요양병원 상당수가 적정성평가에서 하위권 등급을 받아 수가 가산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홍성준 과장은 "욕창 관련 평가지표를 현실에 맞게 개선하고, 중증 노인환자들은 일상생활수행능력이 개선되기 어렵기 때문에 의료최고도뿐만 아니라 의료고도 환자군도 평가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인희 병원장은 "요양병원 입원환자 상당수에서 욕창이 발생하고 있어 적정 수가를 산정할 수 있어야 투자를 확대할 수 있고, 치료성적을 향상시킬 수 있다"면서 "이런 점에서 일당정액수가를 세분화해 욕창 치료를 행위별수가로 청구할 수 있도록 하고, 염증성 처치 등 기본 드레싱 수가 기준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한편 대한요양병원협회는 26일 서울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추계 학술세미나를 열어 '노인환자 욕창 관리와 예방: 임상 지침 및 효과적 치료 전략' 등을 발표 및 토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