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평원은 의료서비스의 질을 제고한다는 취지로 2001년 약제급여 등 5개 항목을 시작으로 적정성평가를 도입했다. 현재는 요양병원 외에도 급성질환 4개, 만성질환 5개, 암질환 5개, 약제 5개, 중환자실 2개, 정신건강 4개 등으로 평가 항목을 꾸준히 확대하고 있다.
요양병원 입원급여 적정성평가는 진료영역 중심의 의료서비스 질 관리를 통해 입원환자의 건강을 보호하고, 요양병원의 자율적 질 향상 유도 및 소비자의 합리적 병원 선택을 위한 정보 제공을 위해 2008년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올해 7월부터 시행 중인 2주기 6차 요양병원 입원급여 적정성평가는 △구조영역(의사 1인당 환자수, 간호사 1인당 환자수, 간호인력 1인당 환자수, 약사 재직일수율) △진료영역(유치도뇨관이 있는 환자분율, 항정신성의약품 처방률, 의약품안전사용서비스(DUR) 점검률, 욕창 처치를 실시한 환자분율) △결과영역(욕창 관리 환자분율, 일상생활수행능력(ADL) 개선 환자분율, 당뇨병 환자 중 HbA1c 검사결과 적정범위 환자분율, 장기입원(181일 이상) 환자분율, 지역사회 복귀율)으로 나눠 13개 지표를 평가한다.
"평가지표 사용 근거가 명확해야 한다"
심평원 진료심사평가위원회 이규덕 전 평가위원은 과거 ‘적정성평가를 통한 효율적 질 관리’ 제목의 기고문을 통해 "바람직한 지표의 방향은 합의된 정의에 근거해야 하고, 지표 측정에 필요한 모든 내용이 포함돼야 하며, 민감도, 특이도, 타당도 및 신뢰도가 높으면서 차이가 명학하게 구분돼야 하고, 근거중심 의학에 바탕을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근거중심 의학에 바탕을 두기 위해서는 평가지표를 사용하는 근거가 명확해야 한다"고 밝혔다.
심평원이 시행중인 적정성평가는 평가지표 사용 근거가 명확할까?
2024년 2주기 2차 고혈압, 당뇨병 적정성평가 평가지표 중에는 ‘방문지속 환자비율’이 있다. 이 지표는 평가 대상자 중 3개월마다 1회 이상 외래를 방문한 고혈압, 당뇨병 환자 비율을 측정하는 것이다.
심평원은 왜 지표를 선택했을까? 심평원은 이 지표를 선정한 근거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2022년 고혈압 진료지침'과 '2007년 대한당뇨병학회지'에 따르면 목표혈압에 도달할 때까지 적어도 매달 추적 관찰을 권고하고, 정기적으로 의료기관을 방문하지 않은 당뇨병 환자의 입원, 사망, 의료비가 많은 것으로 나타나 관리가 필요하다고 명시하고 있어 적정성평가 지표로 선정했다는 것이다.
심평원은 고혈압, 당뇨병 적정성평가의 다른 평가지표에 대해서도 지표 선정근거를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처방지속 환자비율' '혈액검사 시행률' '요 일반 검사 시행률' '심전도 검사 시행률' '당화혈색소 검사 시행률' '지질 검사 시행률' '당뇨병성 신증 선별검사 시행률' '안저 검사 시행률' '혈압 조절률' '당화혈색소 조절률' 등의 평가지표를 선정한 이유로 관련 학회에서 발표한 진료지침을 제시했다.
치매 적정성평가는 2021년부터 신규 치매환자를 외래 진료한 상급종합병원, 종합병원, 병원, 요양병원, 정신병원, 의원이 평가 대상이다.
심평원은 적정성평가 평가지표 중의 하나로 ‘치매 진단 환자의 이상행동증상에 대한 평가 비율’을 선정한 근거로 ‘치매 환자의 경우 인지장애 외에 다양한 행동장애 및 심리 증상을 보인다. 인지장애 증상에 비해 약물 치료나 비약물적 개입으로 증상을 완화시킬 수 있다. 따라서 이상행동증상의 평가는 치매의 진단 및 관리를 위해 반드시 실시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치매 적정성평가에서도 ‘항정신성의약품 약물 처방률’이 비록 모니터링 평가지표이긴 하지만 포함돼 있다. 그런데 심평원은 요양병원 적정성평가에 있는 ‘항정약 처방률’ 평가지표와 달리 지표 선정근거를 밝히고 있다.
‘알츠하이머병, 혈관성치매 또는 경증에서 중등도 비인지 증상을 가진 혼합 치매환자는 뇌혈관 부작용 및 사망의 위험성을 증가시킬 수 있는 항정신병 약물을 처방해서는 안 되며, 경증에서 중등도 비인지 증상을 가진 루이소체치매 환자는 특히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항정신병 약물을 처방해서는 안 되며, 치매 환자의 이상행동증상 조절을 위해 불가피하게 항정신병약물을 투여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평가 산출식도 요양병원 적정성평가와 다르다. 요양병원의 경우 해당 기관의 질환에 대한 환자 구성을 감안했을 때 항정약 처방률과 전체 요양병원의 처방률을 비교해 상대평가하는 방식이다. 반면 치매 적정성평가는 ‘신규 치매 외래 환자 수 중 평가대상 기간 치매치료제 최초 처방 이후 항정약을 처방한 환자수’로 단순하다.
폐렴 적정성평가도 마찬가지다. ‘병원 도착 24시간 이내 산소포화도검사 실시율’이든, ‘중증도 판정도구 사용률’이든, ‘첫 항생제 투여 전 혈액배양검사 실시율’이든 모든 평가지표마다 학회가 마련한 폐렴 진료지침 등을 선정근거로 제시했다. 평가지표의 의학적 근거를 제시함으로써 수용성과 신뢰도를 높인 것이다. 현재 심평원이 시행하고 있는 거의 대부분의 적정성평가가 모두 이런 식으로 평가지표 선정근거를 명확히 하고 있다.
평가지표 선정근거 없는 요양병원 적정성평가
요양병원 입원급여 적정성평가는 어떨까?
심평원은 전국 요양병원을 상대로 11번째 적정성평가를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11번의 적정성평가 세부시행계획을 모두 살펴봤지만 평가지표 선정근거가 제시된 것은 단 한 개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평가지표의 의학적 타당성을 둘러싼 논란이 갈수록 증폭되고 있다. 심평원은 지난 4월 ‘2024년 2주기 6차 요양병원 입원급여 적정성 평가 세부 시행계획’을 발표했다. 발표 직후 요양병원들은 ‘욕창 처치를 실시한 환자분율’ 평가지표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욕창환자의 피부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영양공급은 반드시 ‘정맥주사’로 해야 한다는 것이 논란이 됐다. 당시 심평원은 왜 정맥주사를 통해서만 해야 하는지 근거를 제시하지 않다가 적정성평가를 6일 앞둔 6월 24일 ‘정맥주사를 포함하여’라는 방식으로 평가 세부기준을 슬그머니 변경했다. 세부기준을 변경한 이유에 대해서도 전혀 설명하지 않았다.
요양병원 적정성평가 중 '욕창 처치를 실시한 환자분율' 평가지표 중 피부문제 해결을 위한 영양공급 세부기준은 ‘적절한 열량공급(30kcal/kg이상)이나 고단백치료(1.25g/kg이상)를 한 경우 환자평가표에 기재한다’는 것이다. 다만 (1회 이상) '정맥주사를 포함해' 영양공급을 해야 한다는 것이 심평원이 새로 제시한 평가 지침이었다.
그러자 논란이 더 확산됐다. 정맥주사 방식으로 영양 공급을 하지 않아도 되는 환자도 있는데 왜 그렇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과 항의가 빗발쳤지만 심평원은 납득할만한 답변을 내놓지 않은 채 그냥 따르면 된다는 식의 태도로 일관했다.
그러더니 또다시 평가 세부기준을 바꿨다. 심평원은 적정성평가가 이미 진행 중인 7월 말 욕창환자에게 영양공급을 할 때 반드시 '정맥주사'를 하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세부기준을 다시 변경했다. 요양병원 적정성평가의 의학적 근거를 의심할 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요양병원 적적성평가 평가지표 가운데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전국의 요양병원들은 심평원을 향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있다. "유치도뇨관이 있는 환자분율을 평가하는 기준이 왜 14일입니까?" "3~4단계 욕창을 한 달 만에 개선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평가지표가 중증환자 비율이 높은 요양병원과 그렇지 않은 요양병원 모두에게 공정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대학병원에서 항정약을 처방하면 당연하고, 요양병원에서 처방하면 나쁜 병원입니까?" 심평원이 이런 질문에 대해 의학적으로 타당한 선정근거로 답할 차례다.
최근 대한요양병원협회는 대한요로생식기감염학회에 요양병원 적정성평가 지표 중 ‘유치도뇨관이 있는 환자분율’에 대한 자문을 요청했다. 이 평가지표는 ‘평가 대상 기간 동안 월별 14일을 초과한 유치도뇨관이 있는 환자분율’을 평가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대한요로생식기감염학회는 "유치도뇨관 교체 주기는 정해진 것이 없으나 14일 거치 직후 또는 익일 재삽입 시 유지로 판단한 것은 임상적으로 근거를 찾기 어렵다. 단순 교체 기준에 대해서는 삭제 및 재고려가 필요하다고 판단된다"고 회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