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병원에 버거운 연명의료결정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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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병원에 버거운 연명의료결정법
  • 안창욱
  • 승인 2018.07.18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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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개 서식에 의료기관윤리위 필수
"우리나라 제도 세계 표준과 거리가 멀다"

의료기관윤리위원회를 설치한 대학병원들조차 연명의료결정법대로 시행하길 꺼리는 게 현실이다.”

서울대병원 허대석(내과) 교수는 18일 오전 바른미래당 최도자 의원과 대한병원협회가 주최한 연명의료결정법 개선방안 모색 토론회에서 의료현장의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서울대병원 허대석 교수가 발표하는 모습
서울대병원 허대석 교수가 발표하는 모습

연명의료결정제도는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에 대해 연명의료(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혈액투석 등)를 시행할지, 중단할지 여부를 환자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법적 장치를 의미한다.

연명의료 중단 내지 유보 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본인 스스로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하면 된다.

만약 환자가 사전연명의료의향서나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하지 않은 상태에서 의식불명 됐다면 직계 가족 2명 이상이 환자가 평소 연명의료를 원치 않았다는 일치된 진술을 하면 연면의료 중단 등을 이행할 수 있다.

의식불명 환자의 의사를 추정할 수 없다면 환자 가족 전원(배우자, 직계비속, 직계존속이 포함되며, 여기에 해당하는 사람이 없으면 형제자매 포함)이 합의해야 한다.

하지만 제도를 시행한지 5개월이 지났지만 사망자 중 사전연명의료의향서나 연명의료계획서에 따라 연명의료를 중단 내지 유보한 비율은 10~20%에 불과한 게 현실이다.

의료기관 역시 환자의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또는 연명의료계획서를 정부 전산망에서 확인하고, 이를 이행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병원 안에 의료기관윤리위원회를 설치해야 하는데 전체 병원의 4.3%만 위원회를 두고 있다.

지난 5월말 기준으로 상급종합병원은 100% 의료기관윤리위원회를 설치했지만 종합병원은 302개 중 79, 병원은 1467개 중 5, 요양병원은 1526개 중 16개만 위원회를 두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에 대해 허대석 교수는 미국은 단 한 장의 서류만 작성하면 연명의료 중단 등을 할 수 있는 반면 우리나라는 수십개의 서식을 작성하고 전산에 등록해야 하는 등 번거롭고 복잡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허 교수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한 말기암환자가 요양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임종이 임박해 어쩔 수 없이 대학병원 응급실로 실려오는 게 현실이라고 개탄했다.

환자가 사전연명의료의향서나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했다고 하더라도 만약 입원해 있는 요양병원이 의료기관윤리위원회를 설치하지 않았다면 연명의료정보처리시스템에 접속해 환자의 의사를 확인할 수도, 연명의료 중단, 유보를 이행할 수도 없도록 만든 제도적 문제점을 비판한 것이다.

아울러 허 교수는 영국, 캐나다, 미국, 호주 등은 DNR(심폐소생술 금지요청서)을 연명의료결정 법정서식으로 인정하고, 대리인이 이에 동의하더라도 서명조차 요구하지 않는데 우리나라는 DNR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허 교수는 환자의 연명의료 의사를 추정해 직계가족 2인 이상이 동의하거나 환자를 대리해 환자 직계가족 전원이 동의하면 연명의료를 중단, 유보할 수 있도록 한 것에 대해서도 비현실적이라고 꼬집었다.

허 교수는 세계적인 표준은 친족관계만 보지 않고 보다 넓은 범위의 사람을 포함하는 대리인제도를 운영하고 있다면서 환자 입장에서 무엇이 최선인지에 대해 의료진과 가족이 상의해서 결정한다는 점에서 우리와 큰 차이가 있다고 환기시켰다.

병원협회 김선태 부위원장이 토론회에서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병원협회 김선태 부위원장이 토론회에서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병원협회 대외협력위원회 김선태(노인요양병원협회 보험위원장) 부위원장도 허대석 교수와 비슷한 입장을 피력했다.

김선태 부위원장은 의료현장에서는 가족이 잘못되거나 늦게 의사결정을 하더라도 의료진에게 책임이나 비난을 가하는 사례가 흔하다면서 의료진이 법적, 윤리적 비난과 책임을 감내하고 연명의료중단 결정과 이행을 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DNR과 관련 김 부위원장은 적어도 외국의 법제를 참고해 환자 본인이나 가까운 가족에 의한 DNR 동의서 작성과 적용에 대해서는 검토할 실익이 있어 보인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김 부위원장은 연명의료 중단, 유보 결정 및 이행을 하기 위해서는 병원이 의료기관윤리위원회를 설치운영하고, 위원으로 종교계, 법조계, 시민단체 등의 추천을 받은 사람 2명 이상을 포함해야 해 소규모 의료기관이나 요양병원은 운영이 쉽지 않은 측면이 있다면서 현 수가 수준이 적절한지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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