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중인 사무장병원 지급보류 타당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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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중인 사무장병원 지급보류 타당한가
  • 김무한 변호사
  • 승인 2018.11.05 0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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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법무법인 우리누리 김무한 변호사

앞선 칼럼에서는 사무장병원에 대한 엄격한 처벌에도 불구하고, 정상적으로 설립된 의료기관과 사무장병원을 구별하는 것이 쉽지 않은 현실에 관하여 필자가 변호한 사건을 예로 들어 설명한 바 있다(의료&복지뉴스 2018.10.29.자 칼럼 참조)

김무한 변호사 법무법인 우리누리
김무한 변호사
법무법인 우리누리

그렇다면, 경찰과 검찰로부터 금융계좌추적과 전방위적 압수수색, 수차례에 걸친 소환조사와 구속기소, 법원의 재판 등 지난한 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무죄 판결을 받은 당사자들은 이제 사무장병원의 누명을 벗고 평화롭게 병원을 운영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의 현실에서는 무죄판결을 받은 경우에도 수사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 병원을 운영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대부분의 경우 병원은 폐업하고 당사자들은 빚더미에 올라앉게 되며, 무죄판결을 확정받은 사람들에게 국가가 지급하는 형사보상금은 이들이 입은 치명상에 비하면 반창고 수준의 위로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이러한 비극적 결말이 단지 수사와 재판에 따른 병원 경영상의 곤란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사무장병원에 관한 우리나라 법제도상의 문제점으로 인하여 발생한다는 점이다.

국민건강보험법 제47조의 2에 의하면 요양급여비용의 지급을 청구한 요양기관이 의료법 제33조 제2항을 위반하였다는 사실, 즉 사무장병원이라는 사실이 수사기관의 수사결과로 확인된 경우 건강보험공단은 요양급여비용의 지급을 보류할 수 있고 나중에 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으면 지급보류한 급여비용에 이자를 가산하여 지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는 사무장병원 혐의를 받으면 재판결과 무죄가 확정될 때까지 급여비용지급이 보류된다는 의미인데, 그 지급보류를 개시하는 요건인 수사기관의 수사결과에 의한 확인은 실무상 경찰이 사무장병원임을 공단에 통지하는 것으로 충족되는 것이다.

보다 쉽게 말하자면, 경찰이 사무장병원이라고 판단한 병원은 아무리 많은 환자를 진료해도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급여비용을 지급받을 수 없다는 의미다.

전회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사무장병원으로 판단될 경우 엄한 처벌과 환수조치를 당할 수 있기 때문에 수사가 개시되면 당사자들은 대부분 식욕을 잃고 잠도 이루지 못할 정도의 스트레스를 받아 제대로 일을 할 수 없게 된다.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매달 지출되어야 할 임대료와 인건비, 기타 비용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상황에서 아무리 많이 진료해도 급여비용이 입금되지 않는다면 그 병원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급여진료의 비율이 높은 급성기병원은 말할 것도 없고, 매출의 80~90%가 급여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는 요양병원의 경우 건강보험공단의 지급보류통지는 그야말로 한달짜리 시한부 사형선고를 받는 것과 같다.

아무리 능력 있는 변호사라고 하더라도 의료법위반 사건을 변호해본 경험이 없으면 위와 같은 지급보류제도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하물며 수사를 받느라 정신이 없는 병원장들이 이러한 사태를 사전에 인지하고 대비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가 뒤늦게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지급보류 통지를 받고 급한 마음에 은행대출에 사채까지 끌어서 한두달을 버티고 나면, 직원들에 대한 임금과 퇴직금도 지급하지 못하는 상태로 파산에 이르게 되고, 이제 임금체불로 인한 근로기준법위반,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위반의 책임까지 추가로 부담하게 되는 것이다.

전회에서 예로 들었던 사무장병원 사건의 당사자들은 다행히 변호사의 조언을 받아 지급보류처분에 대비할 수 있었는데, 급박한 상황에서 시세의 20%도 안되는 헐값에 병원을 급매한 뒤 그 매각대금으로 직원들의 퇴직금까지는 지급할 수 있었으나 개원 당시 투자했던 막대한 자금은 모두 빚으로 남게 되었고, 당사자들은 다른 병원에 봉직의로 취직할 수밖에 없었다.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사무장병원을 금지하고 있는 의료법의 취지는 무자격자가 의사를 고용하여 의료기관을 운영하게 될 경우 지나치게 영리를 추구하게 되므로 국민보건에 위해를 끼칠 우려가 있다는 것이며, 사무장병원이 수령한 급여비용 전체를 사기 편취금액으로 평가하는 대법원의 판례와 국민건강보험법상 지급보류제도, 급여비용 환수제도 등은 그와 같은 의료법의 입법취지를 충실히 실현하기 위한 정책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현행 대법원 판례와 국민건강보험법의 태도에 관하여는 여러가지 의문이 있다.

물욕은 인간의 기본적 욕망인데, 과연 비의료인만 영리를 추구하고 의사들은 이윤을 추구하지 않는 것일까?

아무리 사무장병원이라고 하더라도 자격을 갖춘 의사가 진료를 하고 심평원의 평가를 거쳐 지급된 급여비용을 과연 사기의 편취금액으로 볼 수 있는 것일까?

진료계약에 따라 의사가 진료를 하고 이에 대한 대가로 받은 급여비용을 과연 법률상 원인없이 취득한 부당이득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일까?

사무장병원의 의심이 있다고 하더라도 아직 유죄로 확정되지 않은 사건에서 경찰의 판단만으로 급여비용 지급을 중단하여 의료기관을 파산에 이르도록 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과연 헌법상의 무죄추정의 원칙은 사무장병원 사건에는 적용되지 않는 것일까?

어려운 사건을 승소하였다는 기쁨도 잠깐, 의뢰인들의 처지를 생각하며 수많은 의문이 생겨나지만 판례와 국민건강보험법이 변경되지 않는 한 이러한 현실을 바꾸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무자격자의 의료기관 개설을 금지하는 의료법 제33조 제2항의 입법취지를 존중하는 범위 안에서 국민건강보험법의 개정에 관한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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