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법인 사무장요양병원 판단 엄격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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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법인 사무장요양병원 판단 엄격해진다
  • 안창욱 기자
  • 승인 2023.07.18 07:25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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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CW의료재단 의료법 위반 사건 파기환송
의료법인 운영상 위법 사무장병원 처벌 제동   
사진: 대법원 제공
사진: 대법원 제공

비의료인이 의료법인 명의의 요양병원 개설 및 운영을 주도했다고 하더라도 사무장병원으로 처벌하기 위해서는 외형상 의료법인 형태만 갖추고 있을 뿐 탈법적인 수단으로 악용했다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에 따라 의료법인 형태의 요양병원이 운영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횡령이나 배임 등의 위법 행위가 일부 드러났다고 해서 이를 의료법을 위반한 사무장병원으로 처벌하는 관행에 제동이 걸릴 전망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17일 사무장병원 개설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S요양병원 박모 이사장에 대해 징역 2년 6월,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대구고등법원에 환송했다.  

의사 자격이 없는 피고인 박모 씨는 CH의료재단 K요양병원 이사장 J로부터 K요양병원을 인수하라는 제안을 받고 의료법인을 설립한 후 요양병원을 운영하기로 했다. 

이에 피고인과 피고인의 지인 K는 각각 1억 5천만 원 씩 합계 3억 원을 의료법인의 '보통재산'으로 기부하는 것처럼 가장해 대구시로부터 CW의료재단 설립등기를 마쳤다. 

그리고 K요양병원 이사장 J는 K요양병원의 토지와 건물을 새로 설립할 CW의료법인의 기본재산으로 증여했다. 

피고인은 J로부터 CH의료재단 K요양병원을 인수하는 조건으로 하나은행 대출금 17억 5천만 원을 승계해 갚고, J에게 계약금 5천만 원, 공로금 1억 2,500만 원을 지급하기로 양수도 계약을 맺었다.  

CW의료재단은 기존의 K요양병원 명칭을 S요양병원으로 바꿔 의료기관 개설허가를 받았고, 피고인은 CW의료법인 이사장으로 취임해 2009년부터 요양병원을 운영했다. 

피고인은 CH의료재단의 하나은행 대출금 17억 5천만 원의 채무자를 CW의료법인으로 변경하고, 하나은행이 이 과정에서 건물의 시세 하락과 보증인 변경을 이유로 대출금의 일부를 변제하라고 요구하자 3억 7천만 원을 갚았다.  

이를 위해 피고인은 K의 도움을 받았다. K는 CH의료재단의 계좌로 양수도 계약금 5천만 원, 하나은행 대출금 8천만 원을 피고인에게 빌려줬다. K는 하나은행 대출금 변제를 위해 자신의 장인에게 5,900만 원을 빌려 피고인에게 대여하기도 했다.  

이런 절차가 마무리되자 CH의료재단 이사장 J가 선임한 기존의 이사들은 모두 사임했고, 피고인이 선임한 4명이 새로 CW의료재단 이사로 취임했다.   

그러자 검사는 피고인이 의사 등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의료법 제33조 제2항을 위반해 불법 의료기관인 사무장병원을 개설했다며 재판에 넘겼다. 

이에 대해 피고인은 "적법 절차를 거쳐 의료법인을 개설했고, 의료법인 운영 과정에서 중요 사항은 이사회에서 결정했으며, 의료법인을 운영하면서 개인적인 이득을 취득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의료법인을 사유화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1, 2심 법원, 피고인 사무장병원 개설 유죄 판결

대구지법 경주지원은 피고인의 의료법 위반, 사기죄 모두 유죄로 판단해 징역 2년 6월을 선고했고, 항소심을 맡은 대구고법은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 판결을 내렸다.  

대구고법은 피고인이 의료법인을 설립하는 과정에 하자가 있었다는 점을 인정했다.  

피고인과 피고인의 지인 K는 각각 1억 5천만 원을 CW의료법인의 보통재산으로 기부해 의료법인 설립허가를 받았다. 그런데 피고인은 2009년 1월 5일 자신의 예금계좌에 1억 5천만 원을 입금해 예금잔액증명서를 발급받고, 다음 날 1억 5천만 원을 출금해 K 명의의 은행계좌에 입금해 예금잔액증명서를 발급받은 뒤 1억 5천만 원을 다시 출금했다. 

그럼에도 피고인과 K는 2장의 예금잔액증명서를 도청에 제출하는 방식으로 3억 원을 의료법인에 기부하는 것처럼 속였다. 

대구고법은 "대구시청이 피고인의 이런 가장행위를 알았다면 결코 의료법인 설립허가를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대구고법은 피고인이 애초에 영리를 목적으로 요양병원을 운영했다는 검사의 주장도 받아들였다.  

피고인은 CW의료법인 이사장으로 근무하면서 매월 약 1,300만 원의 급여를 받았고, 자신의 처 O 씨를 이사로 등재해 약 900만원의 월급을 지급했다. 

이에 대해 대구고법은 통상적으로 허용되는 급여의 범위를 넘는 이익의 추구라고 평가했다. 

대구고법은 피고인이 K로부터 여러 차례 자금을 조달한 후 그를 사무국장으로 임명해 매월 약 770만 원의 급여를 지급하고, 그의 처를 이사로 선임해 약 900만 원의 월급을 지급한 것과 관련, K가 법인 설립 과정에서 투자한 돈에 대한 수익을 분배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아울러 대구고법은 CW의료법인의 이사나 감사가 정상적으로 활동했다고 보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중요 사항이 이사회의 결의를 거쳐 결정되지도 않았다며 비의료인인 피고인이 불법 의료기관을 개설한 점이 인정된다고 판결했다.  

대법원, 2심 판결 파기 환송

반면 대법원은 이날 비의료인이 의료기관의 시설과 인력 충원 및 관리, 개설신고, 필요 자금 조달,  운영 성과 귀속 등을 '주도적인 입장'에서 처리한 경우 사무장병원으로 볼 수 있다는 기존 판례가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의료법 상 비의료인이 의료법인 명의의 의료기관 개설 및 운영에 필요한 자금 전부 또는 대부분을 의료법인에 출연하는 것이 허용되고, 의료법인 의사결정과 업무집행에 참여하는 것도 허용되기 때문에 위에서 언급한 '주도성 법리'와 충돌한다.  

이에 따라 대법원은 의료법인 명의의 의료기관 개설 자격을 위반했는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주도성 법리'에서 탈피해 외형상으로 의료법인 형태를 갖추고 있을 뿐 비의료인이 탈법적인 수단으로 악용한 사정이 인정돼야 한다고 밝혔다. 

비의료인이 의료기관을 탈법적인 수단으로 악용했는지 여부는 실질적으로 재산을 출연하지 않고 의료법인 명의의 의료기관 개설 및 운영을 주도했는지, 의료법인 재산을 부당하게 유출해 의료법인의 공공성, 비영리성을 일탈했는지 둘 중의 하나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대법원은 "의료법인이 적법한 절차에 따라 의료기관을 개설한 후 상당 기간 정상적으로 운영해 왔다면 설립 과정에 다소 미비점이 있었거나 병원 운영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의료법인의 재산을 횡령, 배임하는 등의 위법 행위가 있었다고 해서 이를 의료법인이 탈법적인 수단으로 악용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분명히 했다.  

의료법인의 규범적 본질이 부정될 정도에 이르러 의료기관 개설 및 운영을 위한 탈법적인 수단으로 악용했다고 평가할 수 있어야 사무장병원으로 판단할 수 있다는 게 대법원의 설명이다.  

대법원은 이런 관점에서 피고인이 개설 자격을 위반해 의료기관을 개설 및 운영했다고 인정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심리와 판단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우선 대법원은 피고인이 CW의료법인 이사장으로 취임해 의료기관의 시설과 인력의 충원 및 관리, 필요한 자금의 조달 등을 주도적으로 처리했다고 해서 S요양병원을 사무장병원으로 운영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봤다.   

피고인이 보통재산 3억원을 출연한 것처럼 가장했지만 기본재산인 의료법인 토지와 건물은 정상적으로 출연했고, 이들 기본재산의 감정평가액은 약 32억 원이었다.  

대법원은 "피고인이 출연을 가장한 부분은 기본재산이 아닌 보통재산으로, 의료기관 시설과는 별다른 관련이 없으며, 전체 출연가액의 10% 정도여서 의료법인의 설립허가와 의료기관 운영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피고인과 사무국장 K, 피고인 아내 O 씨, 사무국장의 처 등이 받은 급여에 대해서도 상당 기간 근무한 이후 비교적 고액의 급여를 수형했던 것으로 보이고, 의료법인의 규모와 수익 증대 및 근무경력 등을 고려해 급여를 인상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평가했다.   

CW의료법인의 규모 및 수익은 2009년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했고, 장기간 근무 경력 등을 인정받아 합리적인 범위에서 급여가 인상된 것이라면 피고인이 의료법인의 재산을 부당하게 유출했다고 평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피고인이 의료법인을 탈법적인 수단으로 악용했다고 평가하기 위해서는 의료법인이 재산 유출 없이 정상적으로 운영된 기간, 재산이 유출된 정도, 기간, 경위, 이사회 결의 등 정당한 절차나 적정한 회계처리 절차가 있었는지 여부 등이 종합적으로 심리 판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대법원은 이런 점을 종합해 2심 법원이 의료법 제33조 제2항 위반에 따른 의료법 위반죄의 성립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아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며 의료법 위반 부분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대구고법으로 돌려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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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무죄 2023-08-18 23:26:16
전형적인 유전무죄 무전유죄 판결이다. 대법관들은 각성하라! 의료법인을 가장한 사무장 병원들에게 대법원이 날개를 달아준 꼴, 나라에서 대 놓고 의료법인은 사무장병원 아니라고 확인해주니 의료법인 가장한 사무장병원들은 대대손손 해먹겠네.

부산바다 2023-07-18 15:36:33
자유시장 경제 원칙에서 직종을 망라하고 누구든지 의료법인을 설립할 수 있다.
의사가 아니면 사무장병원 이런 건 법에도 맞지 않는 일이다.

의료법인 2023-07-18 09:43:10
이제야 세상이 정상적으로 돌아가는구나. 의료법인=사무장병원 취급한 사법당국, 건강보험공단은 반성해야 한다.

현실은 2023-07-18 09:39:05
앞으로 누구나 의료법인 설립해서 교묘히 빼 먹으면 된다, 법이 허용하는구만, 보건복지부에서 의사 견제책으로 만든 의료법인을 남발해서 의료 시장을 헤집어 놓고 법원은 법이 하용할테니 알아서 빼 먹어라, 나랏 돈은 먼저 보는 넘이 임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