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에서 무죄 확정됐지만 남은 건 '상실감'
[기획] 사무장병원 내부고발 피해자들①
자신이 근무하던 의료기관을 사무장병원으로 고발한 한의사 때문에 건실한 요양병원이 하루아침에 폐업하는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뒤늦게 알려졌다.
반면 요양병원을 폐업으로 몰아간 한의사는 사과는커녕 언론사에 허위사실을 계속 제보해 피해자들을 두 번 죽이면서 마치 사무장병원을 척결하는데 앞장선 '정의의 사도'인 것처럼 행세했다.
또 언론사 기자는 해당 요양병원을 사무장병원으로 볼 수 없다는 법원 판결까지 무시한 채 한의사의 허위 제보를 맹신, 피해자들을 '사회악'으로 규정하는 단독기사(?)를 연재해 '이달의 좋은 보도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챙겼다.
지난 7월말 의료&복지뉴스 인터넷 홈페이지에 제보가 접수됐다.
사무장병원 운영자로 고발당해 억울한 옥살이를 했고, 법정싸움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병원은 문을 닫고, 이루 말할 수 없는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다며 사건 전말을 기사화해 더 이상 억울한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제보자인 정춘헌 씨가 기자에게 털어놓은 사연은 기가 막힐 지경이었다.
2007년 경기도에서 M요양병원을 개원한 L씨(재활의학과 전문의).
그는 요양병원을 개원하기 이전 동네의원을 운영했는데, 공무원을 퇴직하고 회사를 운영중이던 정춘헌 씨와 기독단체에서 처음 만나 친분을 쌓아갔다.
정 씨는 L원장이 의원을 이전하면서 병원 행정 전반을 믿고 맡길 사람이 필요하다며 도와달라고 요청하자 고심 끝에 수락해 함께 일했고, M요양병원을 개원하는데 힘을 보탰다. 정춘헌 씨의 직함은 행정부원장.
M요양병원은 순탄하게 성장해 갔고, L원장과 정 씨는 지역사회 봉사활동과 후원, 해외의료봉사를 꾸준히 하며 성경적 병원 경영을 실천해 갔다.
그런데 M요양병원은 2014년 1월 한의사 P씨를 봉직의로 채용한 뒤부터 사건사고로 바람 잘 날이 없었다고 한다.
정 씨에 따르면 P씨는 입사 3개월이 지나자 진료를 등한시한 채 간호사, 환자들과 마찰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일부 입원환자들은 P씨에게 진료받기 싫다며 인근 한의원에 외래진료를 나가 침치료를 받고 오기까지 했다고 한다.
또 병원 직원이나 환자들을 회유해 녹음 녹취하기 시작해 무언가 증거자료를 수집하는 듯한 행동을 했다.
심지어 P씨가 M요양병원을 인수할거라는 소문까지 파다하게 돌았다.
P씨는 다음 해 1월 퇴사했지만 사건은 그로부터 8월 뒤에 터졌다.
누군가 M요양병원은 정 씨가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사무장병원이며, L원장은 의사 면허를 대여한 형식적인 개설자에 지나지 않는다며 국민권익위원회에 고발했고, 사건을 이첩 받은 경찰서에서 압수수색이 들어온 것이었다.
그 뒤부터 L원장과 정 씨는 악몽 같은 시간을 보냈다.
L원장이 정상적으로 병원을 개설했으며, 모든 인사권과 운영 역시 L원장이 행사했다는 근거자료를 경찰서와 검찰에 제출했지만 검찰은 L원장과 정 씨가 사무장병원 개설을 공모했다며 의료법 위반, 사기 혐의로 두 사람을 기소하면서 법정 구속시켰다.
여기에다 건강보험공단은 M요양병원이 사무장병원이라며 요양급여비용 지급 중지 처분을 내렸고, 지역사회에 악소문이 퍼지면서 환자들이 줄기 시작하자 L원장은 어쩔 수 없이 병원을 폐업했다.
정신적 충격을 받은 L원장은 심장질환이 재발했고, 정씨는 당뇨와 혈압이 악화됐다.
이 과정에서 국민권익위원회에 M요양병원이 사무장병원이라고 고발한 사람이 한의사 P씨라는 사실도 드러났다.
하지만 1심 법원은 2017년 9월 M요양병원을 사무장병원으로 볼 수 없다며 이들에게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2심 법원도 지난 5월 1심과 같이 무죄 판결했고, 검찰이 대법원 상고를 포기하면서 누명을 벗을 수 있었다.
비의료인인 정 씨가 의사인 L씨와 공모해 사무장 요양병원을 개설했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다는 게 재판부의 결론이다.
특히 1, 2심 재판부는 한의사 P씨의 주장을 모두 기각했다.
P씨는 법정과 경찰 조서에서 "M요양병원 건물주로부터 정 씨가 병원을 다 주무르고, L씨는 로봇이나 마찬가지로 매달 월급을 받아간다는 말을 들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병원 건물주는 법정에서 P씨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P씨에게 M요양병원이 L원장과 정 씨가 함께 투자해 설립한 병원이라고 말했다는 병원 관계자들은 공판기일에 출석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M요양병원이 사무장병원이라고 주장하는 P씨의 진술에 부합하는 객관적인 자료를 찾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추측에 의한 진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 신빙성이 없다"고 못 박았다.
결국 P씨의 허무맹랑한 내부고발은 전혀 사실이 아닌 것으로 결론 났지만 L원장과 정 씨는 평생 쌓아온 모든 것을 잃었다.
정 씨는 "국민권익위원회 C과장은 P씨가 허위사실을 제보했음에도 사전조사도 하지 않고 안일하게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는 직무유기를 범했고, 경찰과 검찰은 실적을 쌓기 위해 무리한 수사를 했다"고 개탄했다.
이어 그는 "우리처럼 죄가 없어도 내부고발이 되면 병원은 망할 수밖에 없고, P씨는 이런 허점을 악용했다"면서 "내부고발자에 대한 신변보호나 포상도 좋지만 선의의 피해를 막기 위한 대책은 전무한 게 현실"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